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왕위 계승의 법칙 (문단 편집) ==== [[형제]] 상속 ==== 군주가 죽으면 그 군주의 아들이 아니라 그 군주의 형제에게 계승권을 주는 법칙. 그 세대의 형제들이 모두 사망해야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왕권]]이 강하지 못한 경우 자주 나타나는 현상이다. 권력을 나눠 가진 왕의 형제들이 자신들에게 영원히 왕위가 돌아오지 않는 부자상속에 저항하기 때문에 이들을 배려한 상속법이 채택되기 마련인 것이다. 물론 부자 상속제 하에서도 삼촌들이 조카의 왕위를 찬탈하는 일이 때때로 벌어지기는 하지만, 형제상속법은 법제화된 왕위 계승 방식이라는 점에서 찬탈과 차이가 있다. 이 계승 방식의 장점은 [[창업군주]]나 왕조를 중건한 1세대 왕의 다음 2세대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통치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왕조 중흥의 국력을 투입해야 할 시기에 어린 자식에게 왕위가 돌아갈 위험성이 완전히 차단된다. 특히 평균수명이 짧고 군주의 업무가 과중했던 과거에는 한 번 부왕이 젊은 나이에 사망하면 아들 역시 어지간한 강골이 아니고서야 어린 나이에 즉위해 10~20년간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30~40대에 사망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기 쉬워 형제상속이 선호되는 면이 있었다. 또한 2세대 형제들 전체가 국정 운영에 참여하기에 일종의 가족경영 체제가 되어 국정이 톱니바퀴처럼 매끄럽게 돌아갈 수 있다. 2세대가 모두 사망할 때까지 계속되므로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고려 [[광종(고려)|광종]] 처럼 자신과 대립하는 [[대목왕후|정실]]의 [[경종(고려)|적장자]]보다는 [[대종(고려)|이복동생]]을 신뢰해 후계자로 점찍는 경우도 있다. 다만 대부분의 경우 1세대부터 바로 형제상속을 하는 경우는 드물고 보통 1세대→2세대는 부자상속을 하지만 2세대에서 형제상속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다음 세대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2세대 다음의 3세대는 사촌지간인데, 이 3세대들은 혈연의 정이 매우 옅어지고 이전 세대와는 달리 태어났을 때부터 왕자로서의 권리나 봉토가 주어지기에 권력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된다. 게다가 3세대의 사촌형제 중 '''누가 가장 왕위 계승권에 가까운지 판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예를 들어, 원칙상으로는 큰아버지의 맏아들에게 우선권이 있겠지만 둘째 삼촌이 형제 중 가장 잘난 사람이라 왕조에 대한 공헌이 커서 그의 자식들을 따르는 무리가 가장 많을 수도 있고, 막내 삼촌, 즉, 가장 최근의 왕이었던 자의 아들들이 당연히 현 시점에서 가장 왕권에 근접한 자들이다. 아니면 아버지는 순서가 앞인데 나는 나이가 적거나 나이는 많은데 아버지의 순서가 낮을 수 있다.[* 가령 a는 개국군주의 첫째아들인 A의 아들이고 b는 개국군주의 둘째아들인 B의 아들이라고 치자, 보통은 a가 앞이지만 b가 연장자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그래도 조선같이 종법질서가 정해진 국가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할 명확한 기준이 있지만 형제상속제에서는 없다.] 때문에 3세대에선 '''반드시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분쟁이 일어난다'''. 운이 나쁘면 내전의 여파로 국가 멸망, 운이 좋으면 50~100년 이내에 3세대 계승권 분쟁이 끝나고 왕조를 중흥할 '새로운 1세대'가 등장한다. 하지만 그가 죽고 왕위를 물려받은 2세대들이 죽고 다시 3세대가 왕위를 물려받을 시점이 되면 '''또 한 번 왕위 계승 분쟁이 일어난다'''. 따라서 형제 상속은 건국 초기에 자연스럽게 나타나서 그 장점을 발휘하며, 후대로 가며 왕권이 강화되면 슬그머니 부자 상속으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 형제 상속은 현재까지도 존재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왕가인 사우드 가문은 1953년 개국군주인 이븐 사우드 사망 후 현재까지 2세대 군주들이 돌아가며 해먹고 있다. 또한 [[쿠웨이트]]나 [[아랍에미리트]] 같은 토후국 체제의 아랍 군주국들도 무조건 아들 세습이 아닌 형제나 친척들을 후계자로 하고 있다. 근대의 입헌군주제 국가들은 대부분 살리카나 맏이 상속 방식을 따르는 것에 비하면 매우 이색적이다. 다만 사우드 가문이나 쿠웨이트의 사바흐 가문은 중동의 유목민이 뿌리라 유목민적 전통으로 보면 특이한 것은 아니다. 현대에 와선 새로운 부작용이 발생했는데, 바로 평균수명이 현저히 늘어나버려 형제상속이 유지되는 기간이 너무 길어졌다는 것.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도 [[2017년]] 6월 21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살만 국왕]]이 조카 나예프를 왕세자 자리에서 쫓아내고 친아들 [[무함마드 빈 살만]]을 왕세자로 삼는 칙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왕위 계승에 있어서 세대교체는 물론이거니와 '''부자 상속'''까지 확정지으면서 역사의 법칙을 손수 증명했다. [[http://v.media.daum.net/v/20170622081534019|#]] 참고로 사우디아라비아는 왕위 계승의 법칙이 생긴 근본적인 원인, 국가의 기본이 되는 영토와 자원, 인구를 쪼개지 않고 중앙집권을 통한 국력 강화(그리고 그 소유자에겐 자신의 자식에게만 물려주고 싶다는 욕구)라는 이유가 필요 없이 그냥 쏟아져나오는 석유빨로 사우드 가문 전체[* 중동의 유목민들은 가문의 소속감과 연대가 대단히 강해서 사우드 가의 일원이면 대접을 받는다. 우리 나라에서 흔히 말하는 중동 왕자가 이런 사우드 가문의 남계 일원들.]를 유지하기 때문에 석유로 인한 이권만 잘 나눠주면 왕위 계승이 별 잡음 없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론적으로는 오누이 상속 등도 가능하지만[* 이 경우의 실사례로 [[진성여왕]]이 존재한다.] 형제 상속은 남성 계승만 인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계승권 분쟁이 일어났을 때 유목민 특유의 집안 맏어른으로서의 [[어머니]]의 권위나 [[형사취수]] 제도 등의 이유로 왕실의 여성들이 계승권 인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한반도에서도 [[고구려]]가 초기에는 이런 방식을 선호했다고 추정되며, [[고려]]의 왕위 계승에서도 태조의 유훈인 [[훈요십조]]에서부터 특별한 경우에 한해 형제 간에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다는 대목이 나오는 등 형제 상속의 흔적이 있다고 추론하기도 한다. 일례로 [[고려]] [[문종(고려)|문종]]의 세 아들들이 차례로 왕위에 오른 것을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선종(고려)|선종]]이 어린 아들 [[헌종(고려)|헌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자 이를 이상하게 여겼다 하고, 결국 헌종은 선종의 동생인 [[숙종(고려)|숙종]]에게 양위했다는 점에서 당시에는 형제상속이 더욱 자연스러운 방법이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다.[* 다만 어디까지나 고려 전기 왕들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아서 형제 간 계승이 이루어졌을 뿐 법제적으로는 부자 상속이 원칙이었다. 당장 훈요 10조에서도 장자 계승이 원칙임을 못 박아두고 있으며 실제로도 태조 → 혜종부터 시작해 광종 → 경종, 현종 → 덕종 등 특별한 사정이 없는 경우에는 여지 없이 부자 상속이 이루어졌다.] 고대 중국 역사에도 형제상속의 흔적이 있으나 부자 상속이 법제화되면서 일찌감치 사라졌다. 원래 꽤 오랫동안 지역에서 실력행사하던 토후국(왕국보다 한 단계 낮은 정도의 국가. 아랍에미리트가 이런 [[에미르|토후]]국들의 연합국이다)가문에서 갑자기 왕족이 되어 생기는 현상. 몽골 제국도 그렇고 역사에서 갑자기 세력이 커진 유목민 국가에서 2세대까진 이런 현상이 보인다. 역사적으로 이 계승법을 채택한 경우로는 [[키예프 루스]]의 [[류리크 왕조]]가 유명하다. 류리크 왕조는 형제 상속 + 분할 상속으로 왕의 자식들이 영토를 나눠갖고, 다시 형제 상속으로 형이 죽으면 동생이 그 영토를 물려받는다는 난잡함의 끝판왕급 상속제를 사용했다. 물론 괜히 이런 짓을 한 건 아니고 류리크 왕조 러시아의 성립 과정 자체가 바이킹 정복자가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일대의 슬라브 족을 정복해 세운 국가이다 보니 정복과 국가 운영 과정에서 지배자의 친족들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고, 따라서 각자의 지분을 배려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게임 [[크루세이더 킹즈 2]]에서 연단위로 시나리오를 넘겨보면 이 당시의 상황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고증이 완벽한 것은 아니고 게임 시스템의 한계도 있지만 어지간한 책보다 직관적이다.] 그리고 당시의 기술 수준이나 루스 지역의 개발 상태로는 어차피 한 사람이 넓은 영토를 통치하기는 힘들었기에 각 통치 단위를 잘게 쪼개는 것이 유리하기도 했다. 형제가 죽으면 각 형제들이 한 자리 윗형의 영토로 거점을 옮겨야 했기에 독자세력화도 생각보다는 덜한 편이었고. 여기에 더해 류리크 왕조는 형제 상속제 특유의 아랫세대 계승 분쟁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각 영토의 지배자들이 사촌 이상으로 혈연관계가 멀어지면 '''그냥 [[내전]] 한 판, 이긴 쪽이 먹는다.''' 그리고 이긴 쪽은 다시 자식들에게 분할 상속을 해서 몇 대 또 흐르면 다시 [[왕위 계승 전쟁]]으로 땅을 합친다.이런 식이어도 혈족주의가 강한 분할 상속이다 보니 누가 이기건 승자는 여전히 류리크 가문 출신. 만약 다른 가문 출신 지배자가 나오면? 그때는 류리크 왕조 출신의 지배자들이 다구리를 친다. 다만 류리크 왕조의 왕위 계승 방식은 '''류리크 왕조 출신자가 왕위를 이어나간다는 것만 충족'''했을 뿐 국가 발전에는 치명적인 악영향을 주었다. 전국 각지에 거대한 봉토와 강력한 군사력 및 경제력까지 가진 왕위 계승의 정통성이 있는 사람들이 할거하는 상태가 지속되는데 이건 사실상 [[군웅할거]]보다 더 사태가 안좋다. 국가 내부에서 매일 내전이 터지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루스 지역도 시대가 흐르면서 개발도 가속화하고 기술도 발전해서 중앙집권적 체제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 도래했는데도 불구하고 [[키예프 루스]]의 말기로 갈수록 오히려 중앙권력이 붕괴되고 각 지역의 공국들이 독자적인 국가로 발전하는 국가해산상태가 발생한다. 각 지역의 공국들이 워낙 강력하기에 중앙정부인 키예프 대공 혼자서 감당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고 어떤 자가 내전에서 승리해서 키예프 대공 자리를 차지해도 반대파를 섬멸하기는 커녕 반대파가 자기 고향의 공국으로 돌아가서 병력을 모은 다음에 바로 설욕전으로 들어가니 내전만 계속 일어나는 꼴이 지속된 것이다. 그래서 키에프 대공이 되었다가 쫒겨났다가 다시 복위하는 사태가 뱌체슬라프 1세부터 발생하였고 류리크 2세는 5회나 복위하니 중앙정부가 멀쩡할 리가 없다. 결국 키예프 루스의 중심국가인 키예프 대공국은 약화되고 여러 공국들로 분열한 가운데 [[노브고로드 공화국]], [[블라디미르-수즈달]] 대공국, [[갈리치아-볼히니아]] 공국 등이 강국으로 성장하는 국가분열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이렇게 분열된 키예프 루스는 덩치에 비해 국력을 효율적으로 육성 및 동원하지 못하므로 [[몽골 제국]]이 침입해서 분열된 공국들을 하나씩 [[각개격파]]하여 [[몽골-타타르의 멍에]]가 일어나게 되는 큰 원인을 제공한다. 물론 키예프 루스의 공국들도 [[칼가강 전투]]에서 보듯이 연합해서 싸워보려고 했지만 갑자기 손발을 맞추는 일이 어려우니 결국 소용이 없었다. 따라서 [[모스크바 대공국]]부터는 가급적 중앙집권체제로 가려고 했고 이는 현대의 러시아까지 이어지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